2012년 01월 18일
김훈의 <흑산>을 읽고.
어렸을 적 단체관람으로 본 "초대받은 사람들"이란 영화가 있었다.
80년대 톱스타였던 이영하와 원미경이 주연으로 출연한,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당시 갓 십대를 넘겼던 내게 진정 놀라웠던 점은
TV사극으로 접할 수 없던 조선시대 고문, 처형기법의 다양함이었다.
난생 처음 스크린으로 접하는 능지처참 장면도 그렇고,
영화는 내게 조선시대 형벌제도에 관한 텍스트나 다름 없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가장 궁금했던 점은,
고문의 잔학성으로 드러나는 절대 권력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토록 조선백성으로 하여금 천주학에 빠져들게 했는지 여부였다.
김훈의 신작<흑산>은 사학죄인의 패륜을 다스린다는 명목하게
온 강산을 피 웅덩이로 만들었던 조선판 홀로코스트 신유박해를 다루고 있다.
천주교 박해에 관한 내용이지만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정약전과 황사영이란 실존인물을 투톱으로 내세워,
다른 세상을 추구하다 스러져 간 사람들에게 방점을 찍었다.
시기적으로는 정조 사후 노론 기득권 세력이 득세하고,
사문난적과 역적, 사학죄인으로 몰린 남인세력이 박멸되는 지점이다.
김훈이 묘사하는 조선 후기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다.
관리들의 수탈은 사대문 안에서 절해고도까지 이어지고,
가렴주구 속 내팽개쳐진 민초들이 유리걸식하고 객사하는 등
500년 조선왕조의 국운이 쇠락할 무렵과 맞물린다.
굶어죽고 맞아죽고 얼어죽는 가여운 백성들에게
"닥치고, 있는 그대로 만족하며 살아"라고 훈시 내리는 정순왕후의 교설은
21세기 전파낭비에 지나지 않는 이명박의 라디오 연설만큼이나 짜증난다.
(두 경우 모두 똑같은 연설의 두 가지 변주처럼 들린다.)
16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조가 친히 손까지 잡아줬던 황사영이
"군대를 동원해 조선왕실을 혼쭐 내주라"며 청국에 보내려 했던 백서는
죽음밖에 남지 않은 지식인이 가슴 속으로 내지른 단말마같이 들린다.
잔혹한 권력자들의 횡포와 귀양 가고 참수되는 지식인들의 아우성 속에서
그나마 가장 절실하고 마음에 와 닿는 목소리는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굶어죽지 않게 하소서'
라는 간절한 기도문을 남긴 이름 없는 민초들의 소리없는 외침이다.
우리 모두 부모가 낳은 자식이고
짐승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삶을 얻은 것이라는
자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인간의 법도가
결국 칠'흑(黑)'같은 어둠을 희미한 빛이 느껴지는
'자(玆)'로 바꾸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학정과 배반과 밀고에 의해
고통 받다 죽임을 당하는 매 순간마다
자생적으로 안에서 싹틀 수 도 있었던
조선의 근대가 황사영의 몸처럼
갈가리 찢겨지고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내가 흑산을 빠른 호흡으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요인은,
정약전이나 황사영같은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들의 불운이 아니었다.
위정자들에 의해 근본이 천한 자들로 분류된
마노리, 길갈녀, 강사녀, 아리, 육손이같은 인물들의 기구한 삶 때문이었다.
개중엔 왜 죽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했고
무덤 하나 없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의 존재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복원한 김훈 작가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본문의 기도문을 작금의 우리 현실에 맞게 변용해 기도하고 싶다.
"주여, 우리가 물대포 맞지 않게 하옵소서."
*전에 김훈 소설의 여성에 대한 묘사가 거부감이 일어
마초적인 작가의 성향과 내 유전자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끝까지 읽은 작품도 별로 없지만 이번 <흑산>을 통해
그러한 나의 편견이 깨졌음을 이번에 느꼈다.
벌써부터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2011년 가을에.
# by | 2012/01/18 22:30 | 한권의 책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