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흑산>을 읽고.

어렸을 적 단체관람으로 본 "초대받은 사람들"이란 영화가 있었다.
80년대 톱스타였던 이영하와 원미경이 주연으로 출연한,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당시 갓 십대를 넘겼던 내게 진정 놀라웠던 점은
TV사극으로 접할 수 없던 조선시대 고문, 처형기법의 다양함이었다.
난생 처음 스크린으로 접하는 능지처참 장면도 그렇고,
영화는 내게 조선시대 형벌제도에 관한 텍스트나 다름 없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가장 궁금했던 점은,
고문의 잔학성으로 드러나는 절대 권력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토록 조선백성으로 하여금 천주학에 빠져들게 했는지 여부였다.


김훈의 신작<흑산>은 사학죄인의 패륜을 다스린다는 명목하게
온 강산을 피 웅덩이로 만들었던 조선판 홀로코스트 신유박해를 다루고 있다.
천주교 박해에 관한 내용이지만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정약전과 황사영이란 실존인물을 투톱으로 내세워,
다른 세상을 추구하다 스러져 간 사람들에게 방점을 찍었다.


시기적으로는 정조 사후 노론 기득권 세력이 득세하고,
사문난적과 역적, 사학죄인으로 몰린 남인세력이 박멸되는 지점이다.
김훈이 묘사하는 조선 후기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다.
관리들의 수탈은 사대문 안에서 절해고도까지 이어지고,
가렴주구 속 내팽개쳐진 민초들이 유리걸식하고 객사하는 등
500년 조선왕조의 국운이 쇠락할 무렵과 맞물린다.


굶어죽고 맞아죽고 얼어죽는 가여운 백성들에게
"닥치고, 있는 그대로 만족하며 살아"라고 훈시 내리는 정순왕후의 교설은
21세기 전파낭비에 지나지 않는 이명박의 라디오 연설만큼이나 짜증난다.
(두 경우 모두 똑같은 연설의 두 가지 변주처럼 들린다.)

16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조가 친히 손까지 잡아줬던 황사영이
"군대를 동원해 조선왕실을 혼쭐 내주라"며 청국에 보내려 했던 백서는
죽음밖에 남지 않은 지식인이 가슴 속으로 내지른 단말마같이 들린다.


잔혹한 권력자들의 횡포와 귀양 가고 참수되는 지식인들의 아우성 속에서
그나마 가장 절실하고 마음에 와 닿는 목소리는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굶어죽지 않게 하소서'
라는 간절한 기도문을 남긴 이름 없는 민초들의 소리없는 외침이다.


우리 모두 부모가 낳은 자식이고
짐승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삶을 얻은 것이라는
자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인간의 법도가
결국 칠'흑(黑)'같은 어둠을 희미한 빛이 느껴지는
'자(玆)'로 바꾸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학정과 배반과 밀고에 의해
고통 받다 죽임을 당하는 매 순간마다
자생적으로 안에서 싹틀 수 도 있었던
조선의 근대가 황사영의 몸처럼
갈가리 찢겨지고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내가 흑산을 빠른 호흡으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요인은,
정약전이나 황사영같은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들의 불운이 아니었다.
위정자들에 의해 근본이 천한 자들로 분류된
마노리, 길갈녀, 강사녀, 아리, 육손이같은 인물들의 기구한 삶 때문이었다.


개중엔 왜 죽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했고
무덤 하나 없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의 존재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복원한 김훈 작가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본문의 기도문을 작금의 우리 현실에 맞게 변용해 기도하고 싶다.


"주여, 우리가 물대포 맞지 않게 하옵소서."


*전에 김훈 소설의 여성에 대한 묘사가 거부감이 일어  
마초적인 작가의 성향과 내 유전자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끝까지 읽은 작품도 별로 없지만 이번 <흑산>을 통해
그러한 나의 편견이 깨졌음을 이번에 느꼈다.
벌써부터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2011년 가을에.

by 연호정수 | 2012/01/18 22:30 | 한권의 책 | 트랙백 | 덧글(2)

신년 드라마춘추전국 <제중원> 그리고 <히어로>...

폭설과 혹한 속에서 시작된 2010...
이제 내 나이 앞자리가 4로 시작된 다음부턴 한해가 넘어가는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아님 그냥 그렇게 무감각해지려고 애써 외면하는 듯.
작년 세모엔 지난해 신세진 딱 세 분의 신사분들께(해외 포함) 연하장 보내는 걸로 마감하고
그냥 그렇게, 다소 우울하고 조용히 보냈다.

새해벽두부터 유래없는 엄동설한이 전국을 강타하다보니 
요즘은 웬만하면 방콕모드로 외출을 삼가하고 있는데,
급기야 도서관서 대출한 책이 연체되었는데도 나가지 못해 독촉매일이 쇄도하고 있다.

이렇게 추울때일수록 책보단 TV에 의존하는데,
우리집이 워낙 추워 책상에 앉아 있기가 힘들게 만들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요즘 지상파방송3사에서 내보내는 드라마가 모두 흥미진진하기 때문.
특히 새로 편성된 월화 드라마 수준이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젤 관심가는 건 S본부의 <제중원>인데,
내가 좋아하는 박용우의 사극출현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박용우는 '혈의 누'에서의 연기가 인상깊었는데 사극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
근대 여명기 동아시아라는 공간에 관심이 많기때문에 첫회부터 챙겨봤다.
흥미진진한 내용과 소재이긴 하나 아직 뭐랄까..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 안정권에 접어들려면 몇 회 더 지나가야 할 것 같은데,
일단 근대 최초의 병원을 무대로 했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나에겐 여러 이유로 비호감 드라마였던) <아이리스>열성팬인 남편으로 인해
그동안 수목드라마 <히어로>를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
요즘 이걸 보면 우리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걸 넘어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특히 어제 진도혁의 절규 장면에선 정말 나도 울고 싶었다.

주인공이 사악한 권력의 속성을 까발리는  특종을 터뜨려도,
상대편은 그걸 무마시키기 위해 연예계 스캔들을 세간에 던져주면
진실은 묻혀버리고 대중들의 관심은 온통 연예인 사생활로 쏠리는 현실.
드라마지만 정말 그동안 많이 봐왔던 기시감을 느끼게 해준다.
일본소설이 원작이라곤 하지만 작가가 누구인지 정말 이름 석자라도 알아놔야 할 듯.

그러고 보니 지난주 새해 첫 날의 일화가 떠올랐다.
큰이모댁으로 온가족이 집들이겸 새해인사 가는 길에,
선물로 아이스크림 케잌을 사기 위해 '베스킨라빈스'에 들렀었다.

케잌을 고르고 신용카드 결제하려고 늘 하던대로 'MB OUT'을 싸인으로 휘갈겼던 나.
내 또래인듯 보이는 주인 아저씨가 그걸 보고는,
"싸인 참 멋있네요."
하며 엄지손가락까지 치켜 올리며 칭찬하신다.

그러다보니 잠시 화제가 지난밤 명박이와 그 잔당들이 날치기한 4대강 예산처리 문제로 갔는데,
그 아저씨 하시는 말.

"오늘 아침 인터넷 기사보셨죠?  김혜수-유해진 열애설 나온거..."

"예 저도 봤는데요..."

"이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저번에도 고소영-장동건 열애설 터질때랑 상황이 같잖아요."

"아...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전 그냥 암 생각없이 봤는데..."

"암튼 얘네들은 중요할때마다 이렇게 먹잇감 하나씩 던진다니까..."

"어쨋든 올핸 국민들이 정신차려 지방선거 잘해서 맹박이한테 타격좀 줘야 한텐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손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기다리는 식구들 땜에 주인 아저씨와 오래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새해 첫날부터 온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있는 그런 연예게  특종이 왜 터졌는지 뻔한 상황.
나도 미처 몰랐던 일을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 아저씨가 일깨워주시다니...
강추위의 맹렬한 기새도 그렇거니와 정신이 바짝 나는 느낌이었다.

어쨋든 올해는 쥐박이와의 3라운드가 시작된 것 같다.
2008년 촛불의 열기를 넘어서,
2009년엔 무기력감과 열패감에 휩싸였다면,
올해는 뭔가 밑에서부터 꿈틀거리는 한 해였으면 한다.

<히어로>같은 좋은 작품을 집필하는 작가와 피디가 공중파를 담당하고,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처럼 의식있는 시민들이 밑을 떠받히고 있다면,
쥐박이와의 지난한 싸움도 승산이 보일 듯.
아, 그리고  제임스 카메룬의 <아바타>도 지금 천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데,
많은 시민들이 그 영화보고 삽질하는 명박이와 토건업자들을 떠올려줬음 한다.

오늘도 저녁때까지  기다렸다가 <지붕뚫고 하이킥>이랑 <히어로> 봐 줘야겠다.
언제 쥐도새도 없어질지도 모르는 <뉴스후 +>도 챙겨보고...
새해에도 마봉춘 힘내라!!!         

by 연호정수 | 2010/01/07 12:46 | 세상을 바라보는 눈 | 트랙백 | 덧글(0)

런던을 속삭여 줄게

딱딱한 전문서적과 원서에서 잠시 등을 돌리고 도서실 신간코너에서 머리쉼을 하다 이 책을 발견했다.
요즘 반복되는 일상과 무력증에 빠져 지쳐있는 내 영혼에게 뭔가 속삭임을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런던은 나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도시 아닌가? 

정작 이 책을 빌리기로 맘 먹은 데는 최근 범람하는 여행서 다운 데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 흔한 컬러 이미지 한 장 없고 각 단락마다 초라한(?)흑백 이미지 몇 장 박힌 종이질도 시원찮고 적은 크기의 텍스트로 빼곡하다. 이미지로 사고하는 요즘 독자들의 열망을 거스르고 오로지 텍스트로 승부하겠다니...정말 대담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집에 가져와서... 손에 잡은 지 이틀도 안 되어 다 읽었다.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폴, 런던탑 등 공간별로 나뉜 각 단락을 다 끝내기 전에는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내용이 알차고 재미있었다. 어디 머릿 속에 런던의 구석구석을 안내지도 펼쳐지듯  샅샅이 훑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짜임새있는 구성 뿐이랴. 저자의 동서고금을 초월한 방대하고 꼼꼼한 책읽기로 다진 내공은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거쳐서  확대재생산되어 사유의 굵은 줄기부터 지엽적인 감성의 어린잎까지 구석구석 자극한다. 
 
나도 한 때 런더너였던 적이 있었는데 런던에 대해 이렇게 몰랐었나...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더 풍요롭고 여유롭게 런던 생활을 즐길 수 있었는데...하는 후회감과 자괴감마저 몰려든다.  한마디로 이 책은 가벼운 여행서의 무늬를 띠고 있으나, 다 읽고나면  영국의 문화, 역사 그리고 문학이 얽히고 교차하여 유쾌,발랄하면서도 심오한 인문학 교양서 한 편을 읽은 듯한 경험을 했다.

언젠가 이런 여행서를 쓰고 싶은 열망에서 한 권 구입하기로 작정.

책을 읽고 며칠 간은 런던에서의 추억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었다. 특히 세인트 제임스 파크 산책길을 홀로 거닐떄마다  좋은 동반자 노릇을 하던  다람쥐들, 리치몬드 파크에 떼지어 다니던 사슴떼들과 버트란트 러셀의 집을 개조한 공원 휴게소에서의 애프터눈 티, 그리고 저녁 무렵 하이드 파크에서 자주 출몰했던 여우들과 그 많고 많은 런던의 공원에서 여유로운 한낮의 오후 풍경을 만들어 주었던 런더너들 역시...     

by 연호정수 | 2009/12/09 17:32 | 한권의 책 | 트랙백 | 덧글(0)

[펌]헌재 판결 패러디 종합 완결판---- 이명박 버젼

BBK는 내가 건립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주소는 옮겼지만 위장전입은 아니다.

정보이용해서 땅을 왕창 샀지만 땅투기는 아니다.

자식새끼들, 운전기사 모두 위장취업 시켰지만 탈세목적은 아니다.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서울시는 이미 봉헌했다.

종교차별은 없지만 땡중들 절간은 지리정보 '알고라' 죄다 누락이다.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하겠지만 비서관들은 잡아족치겠다.

카트는 몰았지만 부시 애완견은 아니다.

독도는 우리땅이지만 일본은 기다려 달라.

녹색성장을 하겠지만 그린벨트는 해제한다.

4대강을 살려야 하지만 강바닥은 파야한다.

서민을 위하는 정부지만 2% 강부자 종부세는 반드시 폐지하겠다.

미분양은 많지만 공급 부족이니까 아파트 종니 지어 벌이겠다.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는것은 금융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리먼브러더스는 부도났다.

언론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방송사 사장인사는 낙하산이다.

임기는 보장하겠지만 사퇴압력은 넣겠다.

산에 올라 촛불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반성했지만 유모차 부대는 아동학대죄다.

집회의 자유는 보장하겠지만 집회는 원천봉쇄하겠다.

야간집회금지은 헌법위배지만 그래도 체포는 계속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겠지만 인터넷은 고소없이 수사하겠다.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은 포항이다.

전과 14범이지만 가훈은 정직이다.

파병이야기는 안했지만 파병논의는 했다.

멜라민 위험은 정확히 알고 있지만 대책은 성분표시이다.

가스공급 민간참여 시키겠지만 민영화는 아니다.

인천공항이 세계공항평가 1위지만 부실한경영으로 민영화가 되야한다.

복지예산 4000억 넘게 삭감했지만 국민복지는 향상시키겠다

장애인을 바라보며 눈물은 흘렸지만 장애인복지예산은 삭감시켜야만했다.

농촌에서 모내기하며 막걸리는 마셨지만 농업용전기비는 인상시켜야한다.

취임1년내 주가 3000 간다 했지만, 목표는 주가 747이다.

서민물가는 잡겠지만 환율은 올라야 한다.

미디어법은 절차상 위법이지만 법안은 유효하다.

정몽준의원 뉴타운 허위공약했지만 벌금80만원이므로 의원직은 유효하다

by 연호정수 | 2009/10/31 09:53 | 세상을 바라보는 눈 | 트랙백 | 덧글(0)

그 섬에 가다...


일 년에 한번쯤은 미치도록 제주에 가고플 적이 있다.
제주가 외가인 나로서는 태생적으로 그 곳이  회귀본능을 일으키는 건 자연스러울 듯.
외삼촌댁 결혼식으로 인해 4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는 할머니의 품처럼 나를 한결같이 맞아주었다.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주신 땅문제를 두고,
서울 본가 친척들의 교활함과 냉정함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내게,
적어도 그 곳은 정신의 휴양림이자 수구초심의 본거지.

전엔 노후를 그 곳에서 보내야 겠다고 생각만 했었는데,
이번 여행 땐 그 막연한 희망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됨을 느꼈다.
남편과 나는 우리가 그동안 모았고 또 앞으로 모을 수 있는 자산을 모두 끌여들여
식량을 자급자족할만큼 적절한 규모의 농지를 사들이고 집을 지을 계획을 도모했다.
한 사람이 꾸면 그저 꿈이고 공상이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반자로 인해
향후 10년 안에 그 계획이 구체화 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에 돌아온 후에도 나는 여전히 설레임 속에 들떠있다.

by 연호정수 | 2009/10/29 16:2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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